
2026년, 거래적 동맹과 구조적 상호의존 사이에 선 한미 관계
2026년을 앞두고 그려지는 큰 그림: “역대급 밀착”과 “조용한 위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동맹
2026년을 눈앞에 둔 지금, 한미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양국은 70년 동맹의 토대 위에서 안보·경제·기술을 포괄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 2023년 워싱턴 선언에서 시작된 확장억제 체계 정비와 핵협의그룹(NCG)의 제도화, 2024년 안보협의회(SCM)에서 채택된 ‘한반도 핵억제·핵운용 가이드라인’ 등은 한미 동맹이 전례 없이 촘촘한 군사·안보 협의 메커니즘을 구축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치·경제의 층위로 한 발만 더 내려가면, 분위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2025년 들어 미국에서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한국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국 모두 국내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워싱턴과 서울의 새로운 리더십은 동맹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통상과 방위비, 주둔군 문제를 둘러싸고 보다 강하게 “자국 우선”을 외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와 주요 외신은 이를 두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조용한 위기”라고 표현하며, 안보·경제에서 동맹의 방향성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26년의 한미 관계를 이해하려면, 이처럼 표면의 밀착과 이면의 불신, 제도화된 협력과 거래적 접근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군사동맹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지만, 통상·투자·공급망·기술을 둘러싼 경제 안보의 영역에서는 줄다리기와 밀고 당기기가 거세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6년 한미 관계의 핵심 질문, “이 동맹은 어디까지 구조적이고 어디부터 거래적인가”라는 물음이 생겨난다.
안보 동맹의 현재: 확장억제의 제도화와 전통적 군사협력의 재정렬
먼저 안보 분야를 보면, 2026년을 준비하는 한미 동맹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때보다 공고하다. 2023년 워싱턴 선언에서 공식화된 핵협의그룹(NCG)은 2024년 한·미 외교·국방장관 2+2 회의를 거치며, ‘한반도 핵억제·핵운용 가이드라인’이라는 구체적인 문서로 진화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유사시 어떤 절차와 원칙에 따라 핵 억제를 운용하고, 한국의 재래식 전력이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까지 명시하며, 사실상 동맹을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년 워싱턴에서 열린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은 이런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양국 국방장관은 동맹이 “한반도와 그 너머 평화·안정·번영의 핵심 축”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에 대응해 전략자산 전개의 빈도와 가시성을 높이고, NCG를 통해 핵 억제 관련 정보 공유와 모의훈련, 시뮬레이션을 상시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군사훈련 측면에서도 2025년 울치 프리덤 실드(Ulchi Freedom Shield) 연습은 이런 기조를 반영한다. 한국과 미국은 2025년 8월, 총 11일간의 대규모 연합연습을 통해 사이버·우주·무인체계까지 포괄하는 신개념 전쟁 양상을 가정한 지휘소 연습과 야외 기동훈련을 병행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연습에는 수만 명의 양국 장병이 참가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상정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운용됐다.
이처럼 제도화된 확장억제와 고도화된 연합훈련은 2026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국방부와 군 수뇌부 차원에서는 “한미 동맹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북한의 군사행동과 주변 안보 환경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데 있어 동맹의 범세계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국내 정치의 렌즈로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주둔비 분담금, 미군 감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OPCON)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2025년 8월 예정된 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양측이 주한미군 지상병력 감축과 전작권 전환을 “동맹 현대화”의 패키지에 포함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2025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사실상 승인했다고 밝힌 것은 동맹 안보 협력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비확산 체제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오는 조치로 평가된다. 해당 발언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과 연계된 방산·에너지 패키지를 추진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한국을 소수의 핵추진 잠수함 운용국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수 있지만,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둘러싼 비확산 논쟁이 거세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6년의 한미 안보동맹은 이처럼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에서는 핵억제와 연합훈련, 방산·우주·사이버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군 감축 가능성과 고가의 무기 패키지, 전작권 전환과 같은 민감한 의제가 “협상의 대상”으로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제도화된 억제 체계와 거래적 정치의 파고가 같은 텃밭에서 교차하는 것이 지금의 한미 안보 관계다.
통상과 경제 안보: “관세와 투자”로 거래되는 동맹의 새로운 경제 지형
경제·통상 분야에서 한미 관계는 2025년에 가장 큰 진폭을 보였다. 그 여파가 2026년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25년 3월,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안보조사를 근거로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미 개정된 한미 FTA(KORUS)가 미국 자동차 수출 확대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미국 측이 그것을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신호였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이 조치가 동맹국에 대한 안보 논리를 관세 압박에 다시 활용한 사례라고 분석한다.
이 위기는 2025년 7월 말 극적인 합의로 일단 봉합되었다. 미국과 한국은 관세 폭탄 발효 시한을 앞두고 “예비 통상 합의”를 발표했는데, 정치 전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 전체에 15% 관세를 부과하되 처음 예고했던 25%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조정했고, 그 대가로 한국은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에너지·항공기·농산물 대규모 구매를 약속했다.
이후 2025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트럼프–이재명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거래의 구조가 보다 정교한 문서로 정리됐다. 백악관이 발표한 공동 설명에 따르면, 양국은 “호혜적 통상”을 명분으로 비관세장벽 해소, 디지털 서비스 규제 완화, 데이터 국경 간 이전 촉진, 농산물·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에 합의했다. 한국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환경 인증 절차를 간소화하고, 미국 기업이 국내 디지털 규제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하겠다고 했으며, 지적재산권 보호와 경쟁법 절차에서 미국이 우려해온 부분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반대급부로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당초 계획보다 낮게 유지하고, 전자적 전송에 대한 관세 부과 모라토리엄을 WTO 차원에서 지지하는 데 한국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양국은 노동권 보호와 강제노동 연루 상품 수입 금지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명시하며, 통상을 둘러싼 규범 협력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일련의 합의는 2026년 한미 경제 관계의 구조를 규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한편으로 보면, 양국은 관세 갈등을 상호 투자와 시장 개방, 규범 협력 패키지로 봉합하며 “동맹 내 통상 분쟁은 결국 정치적으로 관리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줬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동맹의 통상 관계가 “관세 위협–투자·구매 약속–규제 완화”라는 거래 구조 속에서 반복된다면,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대미 경제 의존의 심화와 통상 주권의 압박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경제 안보의 차원에서 보면, 흐름은 또 다르다. 2024년 발간된 한미 경제정책 보고서와 여러 연구에 따르면, 양국은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양자기술·바이오·청정에너지·우주·사이버 등 이른바 “핵심·신흥 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연구기관은 이를 “동맹을 안보동맹에서 기술중심 포괄동맹으로 확장하는 과정”으로 평가하며,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한 공동 프레임워크, 민관 합동 R&D, 표준·규범 협력 등이 이미 상당 부분 구축되었다고 진단한다.
요컨대, 2026년의 한미 경제관계는 한 축에서는 관세 압박과 대규모 투자·구매 약속이라는 거친 거래가 이어지고, 다른 한 축에서는 기술·공급망·규범 협력이 정교하게 엮이는 “투 트랙 구조”를 띨 가능성이 크다. 이 두 축이 조화롭게 맞물리면 전략적 상호의존이 강화되겠지만, 한쪽에서 정치적 거래가 반복될수록 다른 한쪽의 제도적 신뢰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기술·방산·우주를 잇는 새로운 동맹의 축: “경제 안보 동맹”으로의 확장
2026년 들어 한미 관계를 경제 전문가의 시각으로 본다면,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술과 방위산업, 우주·사이버 협력이 하나의 가치사슬처럼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이 2024년 발간한 분석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비롯해 인공지능·양자·바이오·청정에너지·우주 분야에서 공동 R&D와 공급망 맵핑, 민간 기업 간 파트너십을 촉진하는 수많은 플랫폼을 새로 구축했다. ‘핵심·신흥기술 차세대 대화’, 공급망·상업대화, 광물·배터리 파트너십 등이 그 사례로 거론된다.
특히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양국 업계가 맺은 협력은 주목할 만하다. 2023년 바이든–윤석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바이오산업협회와 미국 바이오협회 간의 양해각서가 체결되면서, 양국은 백신·원료의약품(API)·CDMO(위탁개발생산)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공동 R&D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2026년 이후 한국이 “글로벌 바이오 생산 허브”를 지향하는 전략과 미국의 “연합 공급망 구축” 전략이 맞물리며, 동맹을 새로운 차원의 보건·바이오 파트너십으로 확장시키는 토대가 된다.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한미 협력은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 생산·정비·수출까지 포괄하는 공동 생태계 구축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2024년 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은 양국이 상호 군수지원과 정비, 유지·보수(MRO) 협력을 확대하고, 상호 조달협정(RDP)을 체결해 방산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대량 도입하는 동시에, 자국 방산기업의 역량을 활용해 미국의 역외 배치 전력을 유지·정비하는 역할을 확대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소비국을 넘어 생산·정비·수출의 허브로서 동맹 내 위상을 재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주·사이버 분야 협력도 빠르게 깊어지고 있다. 2024년 발간된 ‘Korea Policy’ 보고서는 한미가 저궤도 위성, 우주감시, 탐사, 위치·항법·시각(PNT) 능력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동시에 북한의 사이버 공격과 제재 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 정책 협의와 실무 그룹, 모의훈련을 상시화하고 있다고 정리한다. 2024년 안보협의회 공동성명 역시 우주·사이버를 동맹의 “전략적 신영역”으로 규정하며, 관련 기술을 방위혁신과 연계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런 흐름을 2026년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동맹은 더 이상 “주한미군과 FTA” 두 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우주·사이버·AI를 잇는 거대한 가치사슬이 동맹의 경제·안보 구조를 재구성하고 있고, 여기에서 생성되는 막대한 투자와 기술·인력 교류가 양국의 성장 전략과 직결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산업 협력이 어느 순간부터 “통상 협상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분야에서의 시장 개방이나 규제 완화, 지재권 보호, 데이터 이전 규범 등이 기술 협력과 패키지로 엮일수록, 동맹은 구조적으로 깊어지지만 동시에 거래의 성격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여론의 균열: “전략적 필요”와 “감정적 피로감” 사이의 간극
정책과 제도, 산업의 층위에서 동맹은 진화하고 있지만, 정치와 여론의 층위에서는 복잡한 균열이 진행 중이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동맹과 통상을 “미국 우선”의 시각으로 재조정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자동차 관세와 대규모 투자·구매 패키지를 둘러싼 협상은 “동맹도 결국 돈과 일자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국방비 분담금과 무기 구매, 주둔군 감축 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한미 동맹을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보는 시각도 다시 부상했다.
한국 내에서는 다른 종류의 피로감이 나타난다. 자동차·철강·기계·IT 서비스 등 주요 수출산업이 대미 관세와 규제 변화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거나, 그 위험에 상시 노출되면서 “동맹국이자 최대 고객인 나라가 동시에 가장 강력한 규제자와 협상 상대”라는 이중적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동맹을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른 일부에서는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는 체념이 공존한다.
또한 한국 국내 정치의 이념 갈등은 대미 인식에서도 분열을 낳는다. 이재명 정부는 안보동맹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와 주권·자율성 이슈에서는 보다 독자적 목소리를 내겠다고 공언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미 연합연습의 강도와 시기 조정, 남북 군사합의 복원 여부, 대북 제재와 대화 병행전략을 둘러싸고 워싱턴과 온도 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여론의 균열은 2026년에도 동맹 운영의 보이지 않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동맹 자체를 부정하는 여론은 소수에 머물겠지만, “동맹은 유지하되 비용은 줄이고 자율성은 넓히자”는 요구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확대될 수 있다. 워싱턴 역시 “동맹은 유지하되, 비용은 동맹이 더 부담하고, 시장은 더 열어야 한다”는 요구를 강화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국 모두에서 동맹의 필요성에 대한 전략적 공감대는 유지되지만, 그 비용과 역할 분담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일상화될 수 있다.
2026년 이후를 향한 시나리오: 관리되는 거래, 구조적 이탈, 혹은 새로운 균형
2026년 한 해를 관통할 한미 관계의 경로는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경제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세 가지 방향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첫째는 “관리되는 거래와 구조적 심화”가 병행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한미 양국은 관세·투자·방위비·주둔군 문제를 놓고 강한 수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시장 개방과 투자·구매 약속, 규범 협력의 패키지 합의로 수습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공급망·방산·우주·사이버 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제도화된 확장억제 체계와 연합훈련은 정례화된다. 동맹은 외형상 “역대급 밀착”을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언제든 또 다른 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불안과 피로가 누적된다.
둘째는 “구조적 이탈의 서서히 진행”이다. 이 경우 관세·투자·방위비 협상을 둘러싼 갈등이 누적되어 국내 정치에서 반미 또는 반동맹 정서가 점차 커지고, 동맹 관리에 대한 정치적 비용이 양국에서 모두 상승한다. 안보·기술 협력은 관성에 의해 일정 부분 유지되지만, 새로운 이니셔티브와 제도화 작업은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춘다. 워싱턴과 서울이 각자 다른 방향의 전략·산업정책을 추구하면서, 동맹은 “형식적으로는 유지되지만 실질적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드는 관계”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2025년 각종 분석이 경고하는 “조용한 위기”는 바로 이 경로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셋째는 “새로운 균형으로의 조정”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양국이 거래적 갈등의 비용을 인식하고, 2026년 안팎을 기점으로 보다 장기적인 동맹 청사진을 다시 작성한다. 예컨대 백악관과 청와대가 공동 비전문을 통해 안보·경제·기술·가치·인적교류를 포괄하는 중장기 동맹 로드맵을 제시하고, 관세·투자·주둔군·방위비 논쟁을 예측 가능한 절차와 기준 아래 관리하는 방식이다. 싱크탱크들이 제안하듯, “동맹을 단기 거래의 도구가 아니라, 중장기 규칙과 기준의 집합”으로 재정의할 수 있다면, 한미 관계는 거래성과 구조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어떤 경로가 현실이 될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2025년 하반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관세·투자·방위비를 둘러싼 거래가 동맹의 의제를 자주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나리오가 뒤섞인 모습에 가깝다. 기술·방산·우주·사이버 협력과 제도화된 확장억제 체계는 분명 구조적 심화를 보여주지만, 그 위에 정치적 거래와 여론의 피로감이 덧칠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한 결론: 필수적 동맹, 2026년은 방향을 정하는 해
경제·안보·정치·여론의 여러 층위를 모두 감안하면, 2026년의 한미 관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주변 안보 환경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한미 동맹을 한국 안보의 절대적인 축으로 자리 잡게 만들고 있다. 동시에 반도체·배터리·바이오·우주·사이버·AI로 이어지는 기술 가치사슬 속에서, 미국은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이자 파트너, 그리고 규범 형성자다. 이런 구조적 상호의존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
그러나 이 동맹이 앞으로 어떤 얼굴을 가질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관세와 방위비, 투자와 무기 구매가 반복되는 거래의 프레임이 계속 강화된다면, 동맹은 점점 더 자주 “누가 더 많이 얻고 덜 잃었는가”라는 계산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제도화된 확장억제와 기술·공급망 협력을 토대로, 보다 장기적인 규범과 기준, 예측 가능한 절차를 정립할 수 있다면, 한미 동맹은 여전히 21세기 국제질서에서 가장 안정적인 축 가운데 하나로 남을 수 있다.
2026년은 바로 그 갈림길 위에 선 해다. 서울과 워싱턴이 서로를 “거래 상대”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공동의 위험과 기회를 관리하는 파트너”로 다시 정의할 것인지에 따라, 향후 10년의 한미 관계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릴 수 있다. 경제 전문가의 언어로 바꾸면, 한미 동맹은 지금 “장기 계약을 재협상하는 시점”에 와 있다. 조건을 잘 설계하면 안정적인 수익과 리스크 분담이 가능하지만, 단기 이익만을 좇다 보면 계약 자체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26년에는 단기적인 관세율 몇 퍼센트, 방위비 몇 조 원, 무기 구매 몇 대에만 시선을 빼앗기기보다, 동맹의 총수익 구조와 리스크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한미 양국이 이 점을 얼마나 냉정하고도 전략적으로 인식하느냐가, “필수적인데 피곤한 동맹”을 “필수적이고도 효율적인 동맹”으로 바꿀 수 있는지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